Tea기록.

Tea기록. 처음으로 잎차를 마시게 됐다.

리야기 2024. 12. 11. 00:08

점점 차가 떨어져가면서 고민하던 잎차를 구매했다.
거름망도 있고 나름 티팟도 있으니 당장이라도 잎차를 우려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잎차는 향도 깊고 카페인은 덜하다고해서 꽤나 기대했다. 봉지를 뜯는 순간 티백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부한 향이 가득찼다. 건조된 찻잎은 향만 내뿜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향에 취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차가 우려지길 기다렸다. 잎차는 티백보다 오래 우려야 한다고 해서 5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스트레이트로 한잔 마셨다.
 

생각보다 별로였다. 처음으로 사본 잎차는 테일러 오브 헤로게이트 얼그레이 티 인데 얼그레이가 문제였다. 베르가못 향이 나와 맞지 않았다. 얼그레이 케익, 얼그레이 밀크티 다 잘먹는데 스트레이트로 마시려니 베르가못 향이 화장품같이 느껴졌다. 우유를 넣어 향을 줄여보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진하게 우려진 차에서 진동하는 베르가못 향이 맛을 넘어 속까지 느끼하게 만들었다.  
 


얼그레이 티는 몇번 더 도전할 것이다. 우려내는 시간을 조절하고 이번에 첫 잎차를 먹으니 정석대로 크림티를 준비했는데 맛이 진한 디저트랑도 먹어보고 식사빵 같은 담백한 음식이나 우유를 바꿔볼 예정도 있다. 그래도 정 안되면 밀크티를 만들거나 시럽으로 만들것이다. 얼그레이 티를 좋아하고 싶다.
 


얼그레이를 좋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다보니 내가 처음 도전한 홍차가 블랙티였던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얼그레이로 홍차를 시작했다면 이 음식이라기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베르가못 향때문에 인생에 티타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한달 반 나를 가장 즐겁게 한 티타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하다. 블랙티를 사게 인도해준 모든 우연에게 감사하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영국배우가 내뱉은 '요크셔' 단어 하나만 알아듣고 쿠팡에 검색 후 가장 저렴한 차가 블랙티가 나온 그 우연들 말이다. 
 
이렇게 차를 마시며 필연이 아닌 우연에 대해서 생각해봤다.